운현궁 안내

왕실 문화의 전당, 운현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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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사

수직사 (守直舍)

운현궁 정문 오른쪽에 있는 행각으로,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 업무를 맡은 이들이 거처했던 곳이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부터 흥선대원군의 거처인 운현궁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고,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막강해지면서 경호가 필요해지자 궁에서 경비병이 파견되고, 관리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현재 수직사의 방 안에 화로·가구·호롱불 등의 생활용품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노안당

노안당(老安堂)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子)를 안지(安之) 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노안당은 노락당과 함께 1864년(고종 1년) 3월에 상량하고, 같은 해 완공하였다.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몸채 동쪽에, 전면 쪽으로는 양칸(樑間) 1칸 도리칸(道理間) 4칸의 누마루인 영화루(迎和樓)가, 배면 쪽으로는 양칸(樑間) 3칸 도리칸(道理間) 3칸으로 된 온돌방과 툇마루가 이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몸채는 서쪽에서부터 4칸의 대청, 2칸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일 서측칸은 퇴칸이며 전후로도 퇴칸을 두었다. 기단은 몸채 부분인 대청과 안방의 전후는 장대석 세벌대로 되어 있고, 누마루인 영화루 부분은 장대석 두벌대로 되어 있으며, 초석(주춧돌)은 가로와 세로의 너비가 같은 정방형 초석인데 상부를 하부보다 약간 줄여서 다듬었으며, 누마루 부분의 초석은 누마루 아래층에 석주형 초석을 세웠다.

기둥은 평주와 고주 모두 네모 기둥이고 약간의 민흘림이 있으며, 모서리는 턱이 있는 빗모접기가 되어 있다. 기둥머리 부분은 보와 장여가 십자로 짜여 사괘맞춤이 되어 있고 그 위에 도리가 얹히고, 부분적으로 평주열에 소로를 끼운 소로 수장집이다. 대청과 퇴칸에는 우물마루가 깔려 있다. 우물마루는 보방향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귀틀을 걸고 이 장귀틀과 장귀틀 사이에 동귀틀을 도리 방향으로 걸어 우물을 구성하였다. 막장의 설치방식은 동귀틀의 홈턱 위를 따서 내리 끼우고 위에서 못질하는 막덮장방식과 막장을 밑에서 올려 끼우고 하부의 턱판 자리에 골대를 대고 못질하는 은혈(隱穴)덮장방식의 두 가지 모두 사용되었다. 하인방의 하부 초석 사이 부분에는 장대석 고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디딤돌과 초석 사이에는 철물로 만든 통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몸채는 전·후퇴 칸이 구성되는 건물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전후의 내진고주사이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퇴칸에는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을 걸었다. 고주 상부에는 중도리를 배치하였고, 종부 위에는 중앙부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어 전체적인 구성은 이고주오량(二高柱五樑)으로 되어 있다. 종도리 받침장여 하부에는 뜬창방을 건너지르고 뜬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소로를 끼웠다. 배면의 동북 측의 내민부분은 동측퇴칸을 걸고 서측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는 대량을 걸어 일고주오량(一高柱五樑)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측으로 내민 누마루 부분은 3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마는 모두 서까래만의 홑처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전면과 동서양측면의 남쪽 일부에는 모두 차양(遮陽)을 달아놓았다. 귀서까래는 모두 선자로 꾸몄고, 회첨부분의 처마는 평행서까래로 처리되어 있다. 차양은 장방형 각재틀 위에 판재를 깐 다음 그 위에 함석을 덮어 만들었는데, 서까래 5~6개 간격으로 지지목을 설치하고 평고대에 설치한 철물에 걸어 설치하였다.

지붕은 몸체의 양쪽인 동측면과 서측면, 그리고 동북쪽이 북측면과 영화루 남측면의 4곳에 합각(合閣)이 설치되는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회첨골에는 모두 중앙에 수키와를 한줄 보내어 2줄로 배수가 되도록 하였다. 합각벽은 전벽돌로 되어 있는데, 서측면에는 중앙부에 팔각형의 테를 두르고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3개의 합각벽에는 박쥐문양을 넣었다. 박쥐는 오복을 가져다주고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믿어온 것은 한자의 박쥐'복'자의 발음이 복 '복(福)'과 같기 때문이었다. 박쥐를 하늘의 쥐라고 하여 천서(天鼠)라고도 하고, 신선의 쥐라고 하여 선서(仙鼠)라고도 한다. 그래서 박쥐는 일상 생활용품이나 회화, 공예품, 가구의 장식, 건축 장식 등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어 오고 있다.


노락당

노락당 (老樂堂)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큰 행사 때 주로 이용하였다. 그 규모는 궁궐에 비하여 손색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된 몸채에 전면 양 끝인 동 1칸과 서 2칸은 남쪽으로 2칸씩을 내밀어 남행각과 연결되고, 배면 동쪽 끝 3칸은 북쪽으로 2칸을 내밀어 전체적인 건물은 一자형 평면의 건물로 되어 있다. 방 배치는, 중앙 3칸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동측과 서측에 도리통 2칸씩의 온돌방과 1칸씩의 부엌(상부다락)이 거의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온돌방과 대청은 앞에는 퇴칸을 두고 마루를 깔았는데 대청 3칸과 서측온돌방 1칸과 동측온돌방 2칸에는 창호를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대청 후면과 동쪽온돌방 1칸에도 퇴칸을 두고 마루를 들였다. 이러한 전후퇴의 구성과 중앙의 3칸의 대청에 동서 양측으로 온돌방을 2칸씩 배치하는 구성은 궁궐 내전의 평면구성방식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또한 배면 쪽에는 동쪽 돌출부를 제외하고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서쪽 3칸과 대청 부분은 노출된 통로로 되어 있고 동쪽의 나머지 칸은 창호를 달아놓았으며, 통로 부분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동쪽 끝 칸은 반칸너비의 퇴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칸은 통로로서 남쪽으로는 노락당 남행각을 거쳐 노안당으로, 북쪽으로는 노락당의 북행각으로 연결된다.

동측면 북쪽 3칸에는 퇴가 달려있어 바깥으로의 출입에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도 배면과 같은 형태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동쪽 부엌의 남쪽으로 내밀어진 칸에는 동쪽의 현재 덕성여대 대지 내에 있는 양관으로 연결되었던 복도각 중 남은 1칸이 동쪽으로 돌출되어 있었으나, 보수공사 시 1864년의 원형을 참작하여 제외했다.

주칸(柱間)은 정면 도리통(道理通)을 살펴보면, 서쪽 첫째 칸이 3,080mm(10척)로 가장 넓고 동쪽 마지막 칸이 1,530mm(5척)로 가장 좁다. 그 사이의 8칸은 2,460mm-2.476mm(8척)로서 같이 잡은 것으로 보인다. 서측면 양통(樑通)을 살펴보면 남쪽으로 돌출된 2칸은 2,470mm(8척)와 2,465mm(8척)이고 몸채 부분은 남쪽으로부터 2,780mm(9척), 2,468mm(8척), 2,782mm(9척)로서 중앙 칸이 한 자(尺) 정도 좁다. 중앙 대청 부분은 전후퇴칸이 1,535mm(5척)와 1,547mm(5척)이고 어칸은 4,948mm(16척)이다. 배면 동쪽의 북쪽으로 내민 2칸은 2,477mm(8척)와 1,548mm(5척)이다.

기단은 몸채 부분의 전·후면은 세벌대로 되어 있으나 상부의 두 단만이 노출되어 있다. 기둥은 모두 네모 기둥이고 약간의 민흘림이 있으며, 턱을 둔 빗보접기가 되어 있었다. 초석은 정방형주초(正方形柱礎)인데 상부를 하부보다 약간 줄여서 다듬었다. 대청과 퇴칸에는 우물마루가 깔려 있고, 덧달린 툇마루 바닥은 장마루로 되어 있다. 우물마루는 보방향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구틀을 걸고 이 장귀틀과 장귀틀 사이에 동귀틀을 도리 방향으로 걸어 우물을 구성하였다. 막장의 설치방식은 동귀틀의 홈턱 위를 따서 내리 끼우고 위에서 못질하는 막덮장방식으로 되어 있다. 벽체(壁體)는 회벽(灰壁)과 지벽장자(紙璧障子)로 되어 있었는데, 지벽장자는 온돌방의 내부 쪽에 회벽이나 머름에 덧붙여서 설치되어 있다. 하인방의 하부 초석 사이 부분은 장대석 아니면 전돌로 고막이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평주열의 디딤돌이 놓여 있는 칸에는 마루의 귀틀하부를 디딤돌로 막고 디딤돌과 초석 사이에는 철물로 만든 통기구를 설치하였다. 서측면에는 중방 아래로 화방벽(火防壁)이 쌓여 있다.

기둥머리 부분은 익공과 창방이 십자로 짜여 사괘 맞춤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주두가 놓이고 퇴량이 얹히는 초익공 양식의 공포가 짜여 있다. 공포는 평주와 고주에 모두 같은 양식으로 짜여 있으며, 익공의 형태는 물익공(勿翼工)이다. 공포는 현재 운현궁 건물에는 노락당에만 구성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몸채는 전·후퇴 칸이 구성되는 건물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퇴칸에는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을 걸고, 전후의 내진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대들보 위에 중대공을 설치하여 종보를 설치한 후 종보의 중앙부에 판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이고주칠량(二高柱七樑)의 짜임이다. 종도리 받침장여 하부에는 뜬창방을 건너지르고 뜬창방과 받침장여 사이에는 소로를 끼웠다. 전면 쪽으로 내민부분 중 서쪽 부엌은 삼량가(三樑架)로 되어 있고, 동쪽 부엌 부분은 평사량(平四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배면 동쪽에서 북쪽으로 내민 부분은 일고주오량(一高柱五樑)으로 되어 있다. 노락당에는 우물반자와 지벽자(紙璧子), 그리고 연등천장으로 천장이 꾸며져 있다. 우물반자는 대청에서 대들보와 하중도리 사이에 반자틀을 설치하여 구성하였고, 각재로 틀을 짜고 종이를 발라 구성한 지반자는 온돌방과 일부 마루 부문에 사용되었으며, 연등천장은 마루 부분에만 사용되었다.

처마는 모두 서까래와 부연으로 구성된 겹처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면 쪽 전체와 배면 쪽 일부에는 차양(遮陽)을 설치해 놓았다. 배면 쪽 귀서까래는 모두 선자로 꾸몄고, 가지 부연이 사용되었다. 회첨부분의 처마는 평행서까래로 되어 있다. 전면의 동서 양측에 돌출된 부분은 박고처마로 처리되었다.

지붕은 몸채 양측에는 합각을 구성하고, 남측으로 돌출시킨 동서 양측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으며, 배면 동북쪽으로 돌출시킨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의 회첨골에는 모두 중앙에 수키와를 한줄 보내어 두 줄로 배수가 되도록 하였다. 수키와의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으나 추녀마루 끝 주변과 합각부의 너새 중 중앙부와 끝부분의 일부, 박공부의 너새중 중앙부와 끝부분의 일부, 그리고 회첨골 중 고삽이 설치되는 부분에는 막새와 내림새를 사용하였다. 합각벽은 모두 전벽돌치장쌓기로 되어있는데, 몸채 서측의 합각벽에는 중앙에 팔각형의 테를 두르고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다. 배면 쪽에는 서측 온돌방쪽에 하나, 동측 온돌방 쪽에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동쪽의 것은 하부를 화강석으로 구축하고 그 위에 전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상부에는 도리, 공포 등 목조부재의 형태를 단순화한 전벽돌이 설치되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덮고 연가(煙家) 2개를 붙여 설치해 놓았다. 서쪽 온돌방의 굴뚝은 동쪽의 것과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전벽돌 대신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점과 상부의 연가가 하나인 점이 다르다.

난간(欄干)은 평난(平欄)으로서 아자(亞字)난간인데 엄지기둥, 난간살대, 하엽, 돌란대 등 부재의 치목수법이 몹시 정교하며 뛰어나다. 살대는 오목하게 등밀이로 가공되어 있고, 하엽(荷葉)은 양각으로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돌란대는 원형단면이지만 정원이 아닌 한쪽이 약간 일그러진 형태인데, 손에 잡히는 감촉은 정원보다도 오히려 손안에 꽉 들어와 잡혀 이것은 난간을 만든 목수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짜임은 난간지방(欄干地枋) 위에 엄지기둥과 난간동자를 세우고, 엄지기둥 사이에는 난간동자 위로 중방을 걸쳤으며, 중방위 난간동자 위치에는 하협을 놓아 엄지기둥 사이에 걸린 돌란대를 받치고 있다. 엄지기둥은 60mm각의 네모기둥이며 상부에는 꽃봉오리 형태의 법수(法首)로 장식하였다. 난간동자는 42mm×40mm이고, 돌란대 직경은 좁은 쪽이 37mm이고 넓은 쪽은 41mm이며, 중방은 60mm×47mm, 살대는 14mm×33mm이다. 살대에는 난간지방이나 엄지기둥, 난간동자에 끼이는 쪽에는 2개의 촉을 내고 살대끼리 맞추어지는 쪽에는 하나의 촉을 내었다. 촉 너머는 8mm×9mm 정도이며, 길이는 하나의 촉은 6m 정도이고 2개의 촉은 13 - 14mm 정도이다. 촉의 끝은 네 면을 비스듬히 깎아 맞춤에 유리하도록 다듬었다.


이로당

이로당 (二老堂)

이로당은 운현궁의 안채로 쓰인 건물로서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민씨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한다. 앞쪽에 자리한 노안당과 노락당보다 뒤늦은 1869년(고종 6년)에 지어졌다.

이로당은 입구자형 평면의 건물로서 당초에는 정면 7칸, 측면 7칸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서측면 전체에 덧달아낸 부분으로 인해 정면이 8칸으로 되어 있었다. 방 배치는, 남측채는 서측 온돌방, 중앙 3칸 대청, 동측 온돌방, 그리고 동쪽 끝으로 통로로 사용되는 퇴칸이 있는데 여기에서 남측으로 이어지는 복도각을 통해 노락당 북행각을 거쳐 노락당으로 연결된다. 대청 전면과 동측 온돌방에는 평주열에 사분합문이 달린 퇴칸이 있다. 동측채는 남측채의 동측 온돌방과 퇴칸에서 이어지는 온돌방과 반침(하부 아궁이), 그리고 북측 온돌방과 퇴칸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 2칸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깥쪽으로 장마루가 깔린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북에서 3번째 칸의 북단(北端)에는 동측으로 돌출시켜 화장실 1칸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칸(柱間)은 정면 도리통을 살펴보면, 서측 첫째 칸이 3,073mm(10尺)로 가장 넓고 일곱째 칸인 동쪽 마지막 칸이 1,545mm(5척)로 가장 좁다. 그 사이의 5칸은 2,457mm - 2,468mm(8척)로서 같이 잡은 것으로 보인다. 서측면의 주칸을 살펴보면 정면쪽 첫째 칸만 2,785mm(9척)로 다소 넓고 나머지 6칸은 2,430mm - 2,465mm(8척)로 같은 간격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남측채와 동측째의 양통(樑通)은 2칸씩으로 되어 있고 서측채와 북측채는 양통이 한 칸씩으로 되어 있다. 남측채 양통에서 앞쪽의 퇴칸은1,545mm(5척)이고 그 뒤쪽 칸은 3,673mm(12척)이다.

초석은 정방형주초(正方形柱礎)인데 상부를 하부보다 약간 줄여서 다듬었다. 기둥은 평주와 고주 모두 네모 기둥이고 약간의 민흘림이 있으며, 모서리는 빗모접기가 되어 있다. 기둥머리부분은 보와 장여가 십자로 짜여 사괘맞춤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도리가 얹혀진다. 부분적으로 평주열에 소로를 끼운 소로수장집이다. 마루는 대청과 퇴칸에는 우물마루가 깔려 있고, 덧달린 툇마루 바닥은 장마루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남측의 통로로 사용되는 툇마루는 장마루로 되어 있다. 우물마루 막장의 설치방식은 막장을 밑에서 올려 끼우고 하부의 텃딴자리에는 솔대를 대고 못질하는 음혈(陰穴)덮장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온돌방 벽체는 회벽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지벽장지(紙璧障子)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벽장지는 온돌방의 내부 쪽에 회벽이나 머름에 덧붙여서 설치되어 있다. 하인방의 하부 초석 사이부분은 대부분 장대석 아니면 전벽돌로 고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남측채 대청 전후면의 디딤돌이 놓여져 있는 칸에는 마루의 귀틀과 디딤돌 사이를 판재로 막았다. 특히 정면인 남측에서는 초석 옆에 붙여 철물로 만든 통기구를 설치하였는데 통기구에는 주역의 괘를 투각해 놓았다.

가구는 입구자형 평면에서 남측채는 1고주 5량, 동측채는 평4량, 서측채와 북측채는 3량으로 되어 있다. 남측채는 전면 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을 걸고 내진고주와 후면평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있으며, 고주머리와 대들보 위에 세운 동자주 사이에 종보를 걸었다. 종도리 받침장여 하부에는 뜬 창방을 건너지르고 뜬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소로를 끼웠다. 동측채는 외부쪽 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을 걸고 내진고주와 중정쪽 평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고주머리와 대들보 위에 세운 동자주 사이에 종보를 걸었다. 고주상부와 동자주상부에는 중도리를 배치하였고, 이 중도리 사이에 수평으로 서까래를 걸었다. 서측채와 북측채는 보칸의 주칸은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데, 전후평주 사이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대들보 중앙상부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외부 4면과 중정에 면한 4면 모두 홑처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남쪽의 복도각이 연결되는 부분을 제외한 외부와 내부 모든 면에 차양을 달아 놓았다. 외부의 귀서까래는 모두 선자로 꾸몄고, 중정에 면한 회첨부분의 처마는 모두 평행 서까래로 처리되어 있다. 차양은 각재를 위에 판재를 깐 다음 그 위에 함석을 깔아 만들었는데 서까래 5 - 8개 정도의 간격으로 배치한 지지목으로 받치고 평고대에 박힌 철물에 걸어서 설치되어 있었다.

지붕은 남측채의 양쪽인 동남쪽과 서남쪽 모서리, 그리고 동측채의 북쪽인 동북쪽 모서리의 3곳에는 합각이 설치되는 팔작지붕의 형태이고, 서북쪽 모서리에는 추녀마루가 용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우진각지붕의 형태이다. 중정쪽의 회첨골에는 모두 중앙에 수키와를 한줄 보내어 2줄로 배수가 되도록 하였다. 수키와와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으나 추녀마루 끝 주변과 합각부의 너새 중 중앙부와 끝부분의 일부에는 막새와 내림새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중정, 서측면, 동측면, 배면에 각기 하나씩 모두 4개의 굴뚝이 설치되어 있고, 중정에 면한 네면의 툇마루와 동측면의 툇마루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모두 평난으로서 교난이지만 살짜임의 형태와 높이가 차이가 있다. 내정의 뒷마루 중 서측 부엌의 출입문에서 내정으로 통하는 부분에는 마루를 들여서 젖힐 수 있도록 설치하여 남측과 북측의 툇마루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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